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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한국 최초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이 설립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사설기관인 경당에서는 서민의 자제를 모아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고, 동시에 서적을 수집하여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종의 도서관 구실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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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서관개요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도서의 간행이 성하였던만큼 많은 도서들을 보관 ·전승시키기 위해 비록 명칭은 여러 가지였지만 도서관의 수와 활동이 적지 않았다. 12세기에 벌써 남보다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인쇄술과 출판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따라서 서적의 간행 ·보존 및 이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고문서(古文書)나 전적을 비치하여 참고로 하던 왕실문고, 불교의 경적(經籍)을 갖춘 사원문고, 교육기관에 설치되었던 교육문고, 관영문고(官營文庫) 및 사설문고 등 각종 문고가 한국 초기 도서관의 역할을 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도서관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이다.

  372(고구려 소수림왕 2) 한국 최초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이 설립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사설기관인 경당에서는 서민의 자제를 모아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고, 동시에 서적을 수집하여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종의 도서관 구실도 하였다.

  백제에서도 일찍부터 서기(書記)라는 국사서(國史書)를 편찬 ·간행하였던 만큼 도서관이 있었으리라 추측되나, 기록에 나타난 것으로는 다만 풍전역(豊田驛) 동쪽에 책암(冊巖)’이라 불리는 곳이 있어 그 당시의 장서처(藏書處)였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유교나 불교의 전래가 늦어 학문의 진흥이 뒤지기는 하였으나, 7세기 후반에 삼국을 통일한 후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이두(吏讀)와 향가(鄕歌)의 보급과 경서(經書)의 훈독(訓讀)으로 독자적인 서적의 간행이 이루어졌다. ()나라로부터 천문 ·의학 ·문학 ·건축 ·미술 ·음악 ·과학에 관한 문헌을 수입하였던만큼, 내외서적을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한 장서처가 여러 곳에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나, 오늘날 이에 관한 유적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고려는 건국 초부터 교육체제와 과거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문고나 장서처와 같은 도서정책을 동시에 펴나갔다.990(성종 9)에 세운 수서원(修書院)은 특히 서적의 수집 ·보존 ·정리 및 활용에 관한 업무를 관장했던 곳으로, 근대적 의미의 도서관기능을 제대로 발휘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비서각(秘書閣)에서도 도서의 보존 ·편찬 ·강학(講學) 등을 맡고 있었다. 고려의 도서관은, 왕실문고:비서각 ·비서성(秘書省) ·문덕전(文德殿) ·중광전(重光殿) ·청연각(淸讌閣) ·보문각(寶文閣) ·천장각(天章閣) ·임천각(臨川閣) , 관영문고:사고(史庫)나 수서원(修書院), 교육문고:관학(官學)인 국자감(國子監)의 서적포(書籍鋪)나 사학(私學)인 구재(九齋), 사찰문고, 개인문고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문고는 교육 ·출판 ·도서관의 구실을 겸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경남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 조판(彫板)이 보존되어 있는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은 세칭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데 81258장으로 되어 있고, 1,513종의 불경(佛經)6,805권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세종 때의 집현전(集賢殿)이나 정조 때의 규장각(奎章閣)을 비롯하여 많은 왕실도서관이 있었다.

  규장각은 1910년 국권피탈로 폐쇄되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관장하다가 1923년 경성제대(京城帝大)로 옮겨졌으며, 현재 그 장서는 서울대학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왕실문고 외에 교육문고로는 관학의 태학문고(太學文庫)와 사학의 서원문고(書院文庫)를 들 수 있다. 태학문고로는 성균관(成均館:1398년 건립)의 존경각(尊經閣:1475)을 빼놓을 수 없으며, 이 존경각은 대학도서관의 효시라고 볼 수도 있다.

  현대적인 최초의 공공도서관은 1910년 일본인들에 의한 도서관구락부(圖書館俱樂部)로부터 시작된다. 이보다 앞서 1906년에 개화의 선구자였던 이범구(李範九) ·이근상(李根湘) ·윤치호(尹致昊) 등이 도서관 설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같은 해에 평양(平壤)에서는 진문옥(秦文玉) ·곽용순(郭龍舜) 등의 유지들이 사립도서관인 대동서관(大同書館)을 세운 바 있고, 이와 전후해서 학교도서관이 출현하였다. 1909년에는 종로도서관(鍾路圖書館) ·광주도서관(光州圖書館) ·대전도서관(大田圖書館) ·철도도서관(鐵道圖書館)이 세워졌다.

  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에는 일본인들이 세운 도서관이 21개관이 되었으며, 1923년에는 현재의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도서관(朝鮮總督府圖書館)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 그 후 전국 주요도시에 각종 도서관이 설립되어 19458 ·15광복 당시 전국의 도서관수는 46개소였다. 6 ·25전쟁이 끝난 후, 1955년 한국도서관협회가 재발족하면서 도서관 교육문제가 거론되고, 대학에서도 도서관학을 교과과정에 넣게 되었으며, 1957년부터 도서관학이 대학교의 독립된 과()로 인정받게 되었다. 63년에는 국회도서관이 설립되어 발전을 거듭하였다. 200912월 현재 국가도서관 3(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법원도서관), 공공도서관 703, 대학도서관 651, 학교도서관 10,937, 전문도서관 584곳이 있다 

[출처] 한국의 도서관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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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ikjoong@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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