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데 우리 아이 하굣길 좀 함께 걸어달라.” “더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다. 팥빙수 한 그릇만 사서 배달해 달라.”
올여름 ‘잔심부름 대행업체’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연이은 폭우에 폭염까지 겹치며 외출을 꺼리는 이들이 늘면서 호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잔심부름 업체는 ‘무엇이든 대신해주는’ 대행 서비스 전문업체를 일컫는다. 음식 배달이나 담배 심부름부터 장 보기, 등본 떼어오기, 밤길 함께 걸어주기 등 대행 범위는 무한정에 가깝다. 잔심부름 업체 관계자들은 “날씨가 나쁠 때는 요금의 20% 정도가 할증으로 붙는데도 주문량이 크게 늘고 있다”고 반색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잔심부름 업체인 ‘애니맨’(1588-5278)의 경우 지난달 주문 건수가 1만5000건에 달했고 . 본격적으로 시작 한지 얼마 안된 대전의 ‘하인’(1661-9452) 의 경우도 1,000여건에 달해 매달마다 전달에 비해 30%가량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말 설립된 ‘해줄게요’의 경우 지난 7월 폭우 기간 동안 처음으로 주문 건수 1000건을 돌파했다. 이용자 김지훈(29)씨는 “원거리거나 요즘처럼 무더위와 폭우가 이어지면 더 움직이기 귀찮고 ‘누가 나 대신 무엇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심리가 발동한다”며 “평소 한 달에 한두 차례 이용했는데 지난달엔 다섯 번 심부름을 맡겼다”고 말했다.
주문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만큼 주문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야구 시즌이 한창인 요즘에는 야구 티켓을 미리 끊어놓은 뒤 야구장 앞에서 만나 전해주는 것이 인기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세탁기에 돌려놓은 빨래들 대신 널어주기’ ‘아플 때 약 사다주기’ 등도 많이 접수된다. 애니맨의 윤주열(41) 대표는 “사회 변화도 주문 내용에 반영되곤 한다”며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이슈로 등장하면 학부모들로부터 ‘밤길 함께 걸어주기’ 주문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고 전했다.
잔심부름 업체가 호황을 누리는 것은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행 서비스 사업은 최근 2~3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한 분야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2년 전만 해도 10여 개에 불과하던 업체 수는 200여 개로 빠르게 증가했다. 업체가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대부분 수요가 많은 서울 강남 지역을 기반으로 했지만 지금은 강북 지역과 수도권, 지방까지 뻗어나갔다.
유일하게 특허 등록을 마친 대전의 ‘하인’(www.hain.kr)도 지방에서 빠르게 급성장하고 있다.
심부름 가격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 업체의 기본요금은 7,000~10,000원 수준. 여기에 시간별·거리별·노동 강도별로 추가 요금이 붙는다. 고속버스 화물 부치기, 장 보기 등은 1만원, 줄 서주기,일손대행등은 1시간마다 1만원씩 추가되는 식이다. 일부에서는 “청소년이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 어떻게 막느냐” “대학생들의 대리출석, 대리시험 등이 버젓이 대행 메뉴에 있는 등 불법의 소지가 많다”는 등의 지적도 제기된다. 중소기업연구원 남윤형 박사는 “잔심부름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 불법적인 요소들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조금 몸을 움직이면 될 일인데도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윤주열 대표는 “딜리버리 코리아(Delivery Korea·배달 한국)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부름’ 문화가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중앙일보 남형석 기자, 서동일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기사최종편집일: 2024-12-24 12: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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