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살고 있는 삶자체가 돈때문에 파괴되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돈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영화를 해야겠다 생각한 거다.”
이 명확한 메시지는 영화를 본 관객에게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각인된다
그래서 <피에타>는 김기덕의 다른 영화들보다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쁜남자> 이후로 그의 영화를 멀리해오다 <아리랑>으로 김기덕영화를 다시 시작한 나에게 <피에타>는 그 간명함의 양만큼 당혹감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의 영화는 비현실적이거나 작위적이라는 일반적 시선으로 재단할수 없으며,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방법으로 창조한 판타지를 통해 우리에게 현실을 잔인하리만큼 아프게 보여준다는 걸 잊고 있었나보다
비약적인 전개(의심없이 엄마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살하려는 채무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등), 돈에 대한 엄마와의 대화,
청계천, 강제추심 등 현실에 대한 직접적 묘사 등 작위적인 연출에서 느껴지는 당혹함을 지나면,
한 평론가의 말처럼 “예기치 못한 대목에서 마술같은 황홀경을 만드는” 김기덕감독 영화의 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
“극단적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 만큼 <피에타>는 우리 사회 최하층의 삶을 아프도록 솔직하게 보여준다
가족없이 사랑을 모른채 자라 채무자들을 불구로 만들어서라도 돈을 받아내는 사채추심업자인 강도는 폭력성과 식욕, 성욕이라는 본능으로만 살아간다
그에게 폭력성이란 식욕만큼이나 자연스러운데 채무자들을 찾아간 날은 그의 손에 살아있는 닭이 들려있고 그 닭을 직접 손질하고 죽여 식욕을 해결한다
무기력하게 들려있는 닭과 화장실에 펼쳐저 있는 피와 내장을 통해 강도의 무자비와 폭력성을 나타낸다고도 볼수 있지만, 죄를 지은 후 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종교적 의례로 기독교에서 예수가 인간내면의 폭력을 해소해주는 희생제의의 제물로 대신 죽은 것과 같이 스스로의 죄를 씻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위이기도 하다
강도가 자신의 살을 베어 미선에게 먹이는 행위는 엄마임을 증명받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빵과 포도주로 예수의 피와 살을 대체하는 천주교의 성체강복식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며 예수가 행한 자기희생을 강도에게 예언한다
이강도는 그 이름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인물이지만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의 모든 죄는 엄마 없이 자라 저질러진 것마냥 엄마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그는 비약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려한다
예전과 같이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 채무자의 집에서 노모를 마주하고 나서 그는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노모가 키우던 토끼를 집으로 가져온다
닭대신 죽일거라 생각했던 토끼가 화장실에서 살아나오는 것은 그의 내적 변화를 나타낸다
새하얀 토끼는 죄를 짖지 않은 강도 자신이며, 엄마에 손에 의해 풀려나 결국 차에 치여 죽음으로서 강도의 마지막을 암시한다
강도의 엄마라고 주장하며 나타난 미선은 예상대로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러온 것이다
그런데 그 복수의 방식이 지금까지 복수를 다룬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미선은 강도의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 그 소중한 것을 빼았겼을 때 느낄 절망감을 통해 강도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이 방법은 필연적으로 미선 자신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복수인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이다
여러 복수에 관한 영화에서 사람들은 복수차제를 통해 속죄하려 하지만 <피에타>의 복수는 속죄와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복수에 대한 윤리적 질문에 대해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보여주는데 머물지만 김기덕은 복수를 통해 희생과 속죄, 용서 더 나아가 구원을 찾고자한다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며 복수를 위해 원수를 아들로 대하는 것도 불사하는 미선이지만 강도를 불쌍히 여기게 되는 미선의 내적 변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복수와 용서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피에타는 성모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 쓰이는 이탈리아어로
영화속에서 강도와 미선의 모자관계를 의미하기도 하며 복수보다는 구원을 향한 절실한 소망으로 읽힐수 있다
강도는 악한 본성의 특정 개인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미쳐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지막 강도가 스스로 묶인채 달리는 트럭이 어스프레한 서울의 한 도로에 그려가는 빨간피의 길은 강도의 속죄에 대한 상징이자
그 길을 통해 우리도 돈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속죄하고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된다
가장 끔찍한 죽음을 통해 가장 숭고한 구원의 길을 보여준 <피에타>를 보고서야
오랜동안 <악어>나 <나쁜남자>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김기덕의 자기반성과 가학, 속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서 김기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또 다른 낯설음은 고층빌딩과 대조를 이루는 기름때찌든 기계공장촌과 청계천 골목의 서울풍경이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고 부유층이 사는 지역에서 살았던 것이 아닌데도 삶의 비참함이 처절하게 묻어나는 그 풍경은 상당히 낯설고 충격적이다
김기덕이 서울이라는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만으로도 극단적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삶에 들어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미선이 말하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인 돈이란 존재이다
영화의 모든 인간관계들은 돈과 관련되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강도의 폭력성과 잔인성의 원인은 돈이라기 보다 사랑의 결핍으로 비춰진다
불구가 된 채무자들의 곁에 항상 어머니(또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부인)가 존재하는 것은 강도의 결핍을 대조적이다
결국 강도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엄마(라고 믿고싶은 사람)의 사랑이다
돈으로 미처가는 세상을 구원할수 있는 것은 예수/마리아로 구성된 피에타상의 또다른 의미인 모성애(로 대표되는 물질적인 것과 대척점에 있는 모든것)일지 모른다
<아리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며 대중과 멀어졌던 김기덕감독은 '희생은 사랑에서 부터 발현되며 그 희생을 통해 용서와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단순한 명제의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대중앞에 다시 서고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단순한 명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방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지막 씬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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