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안의도 뇌진탕으로 판정 사건
아버지 살해한 아들 검거해 구속
야간 당직 중 의문 갖고 탐문수사
공소유지 전담인 공판검사가 야간당직 근무를 서던 중 단순 실족사로 보고된 사건을 파고들어 패륜범죄를 밝혀냈다. 의사조차 사고사로 판정한 사건을 뒤집은 것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경찰의 사건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사체검시를 통해 재수사를 지휘,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범을 밝혀낸 데 기여한 공로로 대전지검 공판부 장태형(32ㆍ사법연수원 39기) 검사에게 8일 격려금을 지급했다고 9일 검찰이 밝혔다.
경찰은 지난 1월 19일 새벽 대전 주거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박모(66)씨 사건에 대해 단순 변사로 타살 혐의가 없다며 유족들에 사체인도 의견으로 검찰에 보고했다. 당시 사체 검안의가 사인을 실족에 의한 뇌진탕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야간 당직검사로 근무를 서고 있던 장 검사는 사건기록을 검토하다 박씨의 실족사 근거가 검안의 의견 외에 사체를 발견한 아들(36)의 진술밖에 없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 현장에 나가 직접 사체를 검시했다. 장 검사는 사체의 머리 부위에 생긴 상흔, 가슴ㆍ팔ㆍ목 부위에 생긴 광범위한 멍자국 등으로 볼 때 뇌진탕에 의한 사망으로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장 검사는 당일 박씨 아들을 조사하고, 박씨 집의 혈흔 반응 검사를 하도록 경찰에 지휘했다. 또 사고당일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인, 박씨와 아들의 행적과 관련한 주변 탐문 등을 실시토록 했다.
다음 날인 20일 사건은 대전지검 특수부 송정은(38ㆍ연수원 35기) 검사의 지휘로 넘어갔다. 용의자로 지목된 박씨의 아들은 세번째 소환에서 경찰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다가 2월 11일 검거됐다. 그는 일부 폭행은 인정했지만 "아버지를 죽인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술을 마신 상황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검찰은 이후 박씨 아들의 휴대폰을 임의제출 받아 사건 이전에 아버지를 폭행하고 찍은 사진을 찾아내고, 현장검증에서 나온 영수증을 통해 아들이 사건 당일 만취상태였다는 진술과 달리 멀쩡히 외출해 로또복권을 사고 휴대폰 요금을 낸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실마리로 박씨 아들의 거짓말을 밝혀내기 시작해 범행을 자백 받고 3월 6일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수사결과 박씨의 아들은 직업 없이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아 쓰면서 술 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함부로 대해왔으며, 사건 당일도 돈을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효자손 등으로 폭행해 1월 18일 밤 11시쯤 속발성 쇼크로 사망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김청환기자 chk@hk.co.kr
